📘 북이스라엘과 앗수르의 관계 – 시대별 요약표
시기주요 인물사건 요약성경 근거
기원전 9세기 중반 | 여로보암 2세 (이스라엘) | 경제적 번영, 앗수르의 상대적 약세 | 열왕기하 14:23–29 |
기원전 8세기 초 | 므나헴, 베가 |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며 생존 도모 | 열왕기하 15:19–20 |
기원전 734~732년 | 베가, 르신 (아람) | 반앗수르 동맹 시도 (이스라엘-아람 연합) → 실패 | 이사야 7장, 열왕기하 16:5–9 |
기원전 722년 | 호세아 | 사마리아 함락, 북이스라엘 멸망 | 열왕기하 17:1–23 |
🏛️ 1. 초기: 긴장보다는 거리 두기 (여로보암 2세 시대)
- 여로보암 2세 때 북이스라엘은 상대적 평화와 번영을 누렸습니다.
- 이 시기는 앗수르 제국이 내부 문제로 약세를 보이던 시기로, 직접 충돌은 거의 없었습니다.
⚔️ 2. 점점 밀려오는 위협 – 므나헴과 앗수르
- 므나헴 왕은 앗수르의 왕 **불(디글랏 빌레셀 3세)**에게 조공을 바치며 왕권을 유지합니다.
→ 이것은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속국처럼 굴복하기 시작한 전환점입니다.
🤝 3. 반앗수르 연합의 실패 – 베가 & 르신
- 이스라엘(베가)과 아람(르신)은 앗수르에 맞서기 위해 유다(아하스)를 끌어들이려다 실패.
- 유다 왕 아하스는 오히려 앗수르에 도움을 요청했고,
→ 앗수르가 다메섹과 북이스라엘을 공격, 아람은 멸망 (이사야 7장)
💥 4. 사마리아 멸망 – 북이스라엘의 끝 (기원전 722년)
- 호세아는 앗수르에 잠시 복속되다가 이집트와 동맹을 맺으려 하며 반란 시도.
-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를 포위, 이후 사르곤 2세가 점령
- 북이스라엘은 역사에서 사라지고, 많은 주민들이 포로로 끌려감 → 열지파의 실종
⛔ 북이스라엘 멸망의 신학적 의미
- 외교적 무모함과 우상숭배가 망국의 주요 원인
- 선지자들은 반복해서 "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이방 세력을 의지한 결과"라고 해석 (호세아, 이사야)
📝 요약
구분내용
정치 | 앗수르의 압박에 굴복, 조공 → 반란 → 멸망 |
군사 | 앗수르의 침공으로 사마리아 함락 (기원전 722년) |
신학 | 하나님 대신 외세(앗수르, 이집트)를 의지한 결과 |
결과 | 열 지파 포로됨, 이방인 유입 → 사마리아인 형성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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